지난 호에서 우리는 라이프 스타디 출판의 일의 역사에 관하여 란 캔가스 형제님과 가졌던 인터뷰의 두 번째 부분을 실었습니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그 인터뷰의 세 번째 부분을 게재합니다.

질문: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출판 준비 과정에 어떤 부분을 담당했습니까? 또한, 형제님이 편집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리 형제님에게 들려드릴 때, 리 형제님은 듣는 도중에 더 전진된 빛을 받아 이후에 인쇄된 메시지에 반영한 부분이 있습니까?

란 캔가스 형제님: 우선, 우리는 리 형제님이 구두로 전한 메시지를 정확히 필사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자매 봉사자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강조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이 일을 신실하게 수행했던 많은 자매들이 있었지만 한 번의 예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우리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옮긴 녹취록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리 형제님은 녹취록에서 어떤 부분이 인쇄될 내용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저를 훈련해야 했습니다. 구두로 전한 메시지에 있던 어떤 내용이 인쇄할 책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실제로 참석했던 청중에게 전달된 것이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는 리 형제님이 사용하는 어휘를 학습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30분에 리 형제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리 형제님의 서재에 앉아서 저는 읽고, 형제님은 듣고 있다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수정했습니다. 제가 읽는 동안 리 형제님은 추가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거의 매주 목요일마다 모든 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리빙 스트림 사무실에 모여 책을 포장하며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봉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보통 몇십 명이 모였습니다. 리 형제님은 수요일 밤에 메시지를 전하고, 목요일에는 그 메시지의 '2부'를 전했습니다. 이 두 메시지가 합쳐져 한 편의 라이프 스터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리 형제님은 그가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를 다시 한다면, 완전히 다른 내용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형제님을 신뢰했고 그 말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리 형제님이 제게 지시하신 또 다른 것은 제가 편집한 모든 내용을 쭉 읽음으로써 도움을 줄 한 무리의 자매들을 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체험을 통해 저는 자매들이 세부 사항에 있어서 매우 탁월하고, 그들의 도움 없이는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매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알고 있었고 우리도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항목에 매우 예리했습니다. 그들은 주장하는 대신 추천을 했고, 그런 다음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는, 리 형제님에게 전화하여 진리의 항목이 제시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으로 제가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는 사안임을 알렸습니다.

이제 1974년 12월에 있었던 한 특별한 사건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리 형제님은 ‘로마서 라이프 스타디’를 진행하고 있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말하는 와중에 리 형제님은 주님으로부터 놀랍고 신선한 빛과 계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메시지를 전하는 일정을 재조정하여 두세 개의 메시지를 추가하셨는데, 그 메시지들은 의롭게 됨의 주관적인 방면에 있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음만큼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최근에 수요일 저녁 사역 집회를 준비하면서 이 메시지들을 모두 다시 읽었는데, 거의 반세기 전에 나온 메시지임에도 여전히 매우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단어를 그대로 옮기는 녹취록을 작성하는 데 매우 유능한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 로마서 메시지를 본인이 이미 편집한 상태로 제게 주었습니다. 읽는 도중에 저는 메시지의 일부가 녹취록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어떤 부분들을 삭제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타이핑하는 동안 본인이 편집을 했습니다. 저는 저와 동역하며 필사 작업에 참여하고 있던 다른 자매들을 지도하는 책임을 담당한 자매에게 메시지 전체를 다시 필사해 줄 다른 자매를 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몇몇 항목들이 이미 삭제된 후였습니다. 그 특이한 자매의 자아와 기질에 속한 이러한 면이 끝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리 형제님은 그녀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다른 봉사자 자매와 제가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조금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저와 동역하는 자매에게 그 자매는 더 이상 필사할 수 없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원수가 어떻게 타고난 생명과 자아를 이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자매들은 자신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봉사로 여겼고,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에 제가 아직 텍사스 주 어빙에 살고 있을 때, 우리가 앞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예정이며 저도 컴퓨터로 편집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자 기기를 다루는 데에서는 매우 뒤쳐져 있었습니다. 편집 작업은 초기 단계에서 이루어졌고, 따라서 이것은 제가 직접 타이핑을 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자매들이 더 이상 제가 편집한 메시지를 타이핑하여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매들은 여전히 녹취록은 타이핑하겠지만, 실제 편집은 제가 컴퓨터로 해야 했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편집한 메시지를 테이프에 녹음하면 자매들이 이것을 필사했습니다. 이것이 리 형제님이 사전에 정한 안배였습니다. 저는 필사된 메시지를 읽고 테이프에 편집된 메시지를 녹음했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편집한 메시지가 타이핑되었고, 저는 그것을 리 형제님에게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방식으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타자기도 사용할 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성인들을 위한 야간 타이핑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그곳에 있는 고등학교에 등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타이핑을 배워야 했습니다. 결국 이 온 과정이 발전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어빙에서 전자 기기를 사용하여 작업을 시작했을 때, 제가 완성된 문서를 애너하임에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봉사하는 자매님 한 분이 제가 보낸 문서를 리 형제님에게 읽어주었습니다. 리 형제님이 봉사하는 어느 자매님에게 했던 말이 있는데, 나중에 그 자매가 합당한 방식으로 제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 말은 그 자매님이 읽어준 문서에는 한 마디도 낭비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애너하임에서 리 형제님과 함께한 십 년 반 동안, 아마 천 시간 이상을 보낸 후에 제가 증언할 수 있는 것은 형제님이 단 한마디의 말도 낭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리 형제님은 어떠한 본이었는지 모릅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