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사람이 이 문제에 관해 나에게 따져 물은 일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니 선생님, 만일 하나님이 우리 죄들을 용서해 주기 원한다면 죄들을 용서해 주겠노라고 말씀만 하실 수 없나요? 어째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습니까? 이것은 너무 수고스런 일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이 좋아서 법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도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우리 죄를 눈감아 주는 그런 분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죄들을 용서해 주기 전에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몇 년 전에 나는 난징(南京)에 있는 어느 여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 문제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단상 위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예쁜 꽃병이 있었다. 나는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물었다. “만일 누군가 이 꽃병을 깨뜨린다면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칙에 따라 변상해야 한다고 교장 선생님은 대답했다. 나는 이어서 또 물었다. “만일 교장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학생이 깨뜨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교장 선생님은 같은 교칙을 적용시키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만일 그 학생이 변상할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교장 선생님은 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되풀이해 말했다.
다음 날 집회 때 보니까 꽃병이 없어졌다. 그 꽃병은 교장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학생이 깼는데 공교롭게도 그 학생은 제일 가난한 학생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예수의 죽음에 의한 구원의 도리를 전했다. 그 교장 선생님은 사랑한다는 근거로 그 학생이 저지른 일을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변상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런 상황에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즉 학생이 변상할 금액을 교장 선생님이 지불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한편으로는 교칙을 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장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들에 대한 심판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들의 용서함을 위하여 모든 죄들의 형벌을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오심이다. 하나님은 우리 대신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오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을 불의에 빠뜨리지 않고 그분의 정당성과 의로우심을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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