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지지하기 위해 사용한 어구는 하박국 2장 4절에서 왔습니다. 이 어구는 신약성경에서 세 번 인용됩니다. 회복역 성경은 동일한 헬라어 인용구를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번역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과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서는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이고, 히브리서 10장 38절에는 ‘살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절 중 하나인 하박국 2장 4절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딤전 1:4 각주 4)의 범위와 요소에 관한 예언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성한 계시로 말미암아 이 점을 포착했고 교회를 위한 자신의 사역에 적용했습니다. 신언자 하박국은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합 2:4). 이 문장의 헬라어 번역은 신약에서 거의 그대로 세 번 인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이 인용된 앞뒤 맥락을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이 문장에 하나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회복역 성경은 이러한 함축된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외견상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해하는 ‘살다’라는 동사는 ‘삶을 살다’를 뜻하며, 이러한 의미가 또한 ‘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에 담긴 일반적인 의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말은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다’로 이해해야 합니다. 분명히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번역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때때로 이것과 다른 별개의 것을 염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곳에서 율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바울의 말 속에 이 점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다면, 의가 참으로 율법에서 나왔을 것입니다.”(갈 3:21)

헨리 알포드(Dean Henry Alford)는 갈라디아서 3장 21절에 대해 해석할 때 이 절에 하박국 2장 4절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그의 관점에 동의하는데, 만약 그의 견해가 사실이라면, 하박국 2장 4절을 번역할 때 ‘살 것이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제세타이(ζήσεται)’는 바울의 생각 속에서 인생 전반에 걸친 노력뿐 아니라 그러한 생활을 시작하는 사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기록한 글의 맥락이 거듭남을 통한 생명의 시작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하박국 2장 4절을 단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이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는 바울의 의도를 완전하게 드러내지 못하게 됩니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16절)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계시되어 있다고 말합니다(17절). 바울은 자신의 논점을 입증하기 위해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합니다. 이 문맥에서 바울의 초점은 복음이며, 이 복음은 하나님의 의(즉 의이신 그리스도-고전 1:30)에 근거하여 믿음을 통하여 믿지 않는 이들을 영원한 생명 안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길입니다. 이 절의 초점은 단지 믿는 이들이 믿은 후에 사는 삶에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믿을 때 그들이 받는 생명의 시작에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 믿지 않는 이들은 믿는 이들이 되고, 그 결과 그들은 영원한 생명(요 5:24, 1:12, 3:15)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한 하박국 2장 4절이 단지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 번역된다면, 그 인용문의 완전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의 문맥은 생명의 시작이라는 관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회복역 성경은 이 절에서 바울이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부분을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번역은 ‘생명을 얻고’를 통해 시작을 암시하고 ‘살 것이다’를 통해 사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복합적인 번역에 대한 위트니스 리 형제님의 각주는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롬 5:18) 그 생명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이 생명은 철저하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변화시킬 것이다. 로마서는 주로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롬 1:1-5:11, 9:1-11:36)과 생명을 얻는 것(롬 5:12-8:39)과 이 생명으로 합당하게 사는 것(롬 12:1-16:27)을 다루고 있다. 이 절도 역시 이 세 가지 요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절을 로마서 전체의 요약으로 생각할 수 있다.(로마서 1장 17절 각주 4)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의롭게 됨의 결과는 믿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비교 롬 5:18). 여기에서 다시 바울의 초점은 믿음이 나중에 무엇을 하는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믿는 이들에게 무엇을 처음 가져다주는 지에도 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것임을 복음으로 전하셨습니다(갈 3:8).

(복음으로 주어진 약속 이후에 온)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갈 3:11)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서 바울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합니다. 복음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은 믿는 이들의 신성한 생명에 대한 체험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이 절의 앞뒤 문맥에 따르면 다시 한 번 이러한 시작에 주의가 요구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의 시작에서 말하듯이, 믿는 이는 처음에 복음을 믿음으로 생명을 받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그 영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들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갈 3:2) 그 영은 생명(롬 8:2)이시며 생명을 주십니다(요 6:63, 고전 15:45). 우리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생명의 시작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만일 생명을 줄 수 있는 율법이 주어졌다면, 의가 참으로 율법에서 나왔을 것입니다.”(갈 3:21)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복역 성경은 ‘생명을 얻고’라는 표현과 ‘살 것이다’에 수반된 생활로 이러한 시작의 의미를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 담았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

신약에서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세 번째 절은 히브리서 10장 38절입니다. 이 절의 앞뒤 문맥은 명백하게 믿는 이들이 처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는 시작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믿는 이들의 인내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명백히 초점이 믿는 이들의 생활에 있기 때문에 이 인용절을 기존대로 번역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히 10:38) 이곳에서 ‘생명을 얻고’를 번역에 추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오류일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고려하고 있는 믿음은 신성한 생명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생활 가운데 인내하고 약속을 얻는 수단입니다(히 10:36-37).

그러나 이곳에서 다뤄진 매우 중요한 요점을 소홀히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단 한 번 만에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개신교의 단순한 인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큰 실수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있는 권면은 사실 매우 강력한 경고(비교 히 10:29-31)로서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 내내, 심지어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그 순간까지 반드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실 분이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히 10:37-38) 하나님의 경륜의 모든 항목들, 생명의 시작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까지 모두 믿음 안에 있으며 또한 반드시 믿음 안에 있어야 합니다(딤전 1:4).

언뜻 보기에 바울은 구약의 난해한 절 한 개를 골라서 원래의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박국 2장 4절의 문맥 전체를 살펴볼 때 어떻게 이 절이 바울의 주의를 완전히 사로잡았는지와 그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신약 경륜을 열어주었는지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 “이상을 기록하되, 판에 분명히 새겨 / 달리는 이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이 이상은 장차 정해진 때를 위한 것이니 / 끝을 재촉하고 거짓되지 않으리라. / 그때가 늦어지더라도 기다려라. / 왜냐하면 그때는 반드시 올 것이요 지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라, 교만에 빠진 자를. 그의 혼은 그 안에서 올곧지 않으나 /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합 2:2-4)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의 임박한 파멸을 가리키지만 내재적으로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믿는 이들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말합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하박국서에 나중을 위해 분명하게 기록된 이러한 이상을 달려가다 본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바울은 이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께서 육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을 때 이미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계시로 말미암아 이 이상의 본질이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 안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복음 그 자체이며,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뿐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내는 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리 형제님은 이 예언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길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인 신성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자격이 있게 되고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살기 위한 것이다(롬 3:24, 5:1-2, 엡 2:8). 이것이 구약의 예언서 안에 있는 신약의 복음이다.(호세아-말라기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27, 198쪽)